2015.06.21 블로터 “3D 프린터로 빚은 5살 채빈이의 ‘무지개의수'”

3D프린터로 빚은 5살 채빈이의 ‘무지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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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빈이는 팔이 불편하다. 날 때부터 그랬다. 팔꿈치 밑으로 원래는 뼈가 두 개여야 한다는데, 채빈이는 하나다. 그래서 왼손에는 엄지손가락이 없다. 오른팔보다 좀 짧은 것도 이 때문이다. 홀트-오람 증후군. 10만명 중 1명 꼴로 생긴다는 희귀한 병이다. 굳은 손가락을 풀기 위해, 엄지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5살 채빈이는 매주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다. 채빈이는 재활 치료가 싫지 않단다. ‘예쁜 손’도 갖고, 힘도 기르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런 채빈이에게 조만간 ‘예쁜 장갑’이 배달될 예정이다. 부산 ‘펀무브’ 그룹이 3D프린터로 채빈이를 위한 맞춤 장갑을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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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로 만든 ‘예쁜 손’

“병원에서 채빈이 작업치료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3D프린터로 의수를 만든다는데 채빈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먼저 알려 주셨어요. 그래서 찾아보게 됐어요. 서울에서 하시는 분도 있었고, 부산에도 있더라고요. 무작정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냈죠.”

채빈이 엄마 김경미 씨는 담당 선생의 조언에 관심이 생겼다. 채빈이의 왼손에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길로 엄마는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페이스북에서 펀무브라는 이름의 그룹과 만났다. 3D프린터로 의수를 제작하는 비영리 그룹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3D프린팅 기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동호회처럼 모였다. 채빈 엄마의 그야말로 무작정이나 다름 없는 두서없는 메시지에 펀무브 그룹은 흔쾌히 답장을 보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보낸 지난 3월의 페이스북 메시지는 채빈이의 3D프린팅 장갑이 돼 6월에 돌아왔다.

3D프린팅 기술로 의수를 제작하는 이들의 소식이 조금씩 세상 밖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근배 반송센텀의원 원장을 중심으로 모인 부산의 펀무브가 그렇고, 이상호 대표가 설립한 서울의 ‘만드로’도 그중 하나다. 3D프린팅 기술이 쉽고, 빠르고, 값싸게 의수를 제작하는 데 알맞은 기술이기에 그렇다. 기존 전자의수는 1천만원에서 4천만원을 넘나들지만, 3D프린터로 만들면 십수만원으로도 간단히 제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구글이 3D프린터로 의수를 제작하는 22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3D프린팅 기술이 절단 환자 등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3D프린터로 의수를 제작하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지만,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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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돕는 더 나은 기술이 되길”

만드는 이들만 3D프린팅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드는 이들만큼 실제 사용하게 될 이들도 3D프린팅 기술로 빚은 장갑이 채빈이의 일상에 도움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채빈이가 시작하면,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기술은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테니까.

“채빈이는 한창 클 나이잖아요. 아직은 미흡하지만 채빈이를 시작으로 지금부터라도 기술이 발전한다면, 성인이 되면 더 좋은 기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매우 희망을 갖고 있어요. 시작이라는 것이 좋잖아요.” 채빈 아빠 방경민 씨는 “보조 도구가 아이의 일상을 좀 수월하게 바꿔주길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조금 아쉽지만, 채빈이 가족과 부산 펀무브의 첫 번째 장갑은 조금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다. 첫 번째 시도에서 5살짜리 아이의 손에 꼭 맞는 디자인을 완성하기에는 부산과 서울은 먼 거리다. 1차로 장갑이 도착했지만, 채빈이의 손에는 너무 컸다. 부산에서 두 번째 장갑을 제작해 곧 채빈이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두 번째 실험도 실패하면 제3, 제4의 시도를 기대할 수 있으니 아쉬움의 무게는 그리 버겁지 않다. 3D프린터로 입체 물체를 뚝딱 찍어낼 수 있는 시대의 선물인 셈이다.

김경미 씨는 기대만큼 걱정도 컸다. 아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갑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려하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채빈이는 생각보다 잘 따라줬다.

“예 쁜손 장갑 있으면 좋겠어? 라고 물어보니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오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첫 번째 장갑이) 좀 커서 채빈이에게도 잘 어울리지는 않더라고요. 아마 제대로 만들어지면,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것도 재활로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무지개 같아요”

방경민씨가 채빈이에게 장갑에 관해 물었다. 채빈이는 장갑이 “무지개 같다”라고 대답했다. 채빈이는 무지개를 좋아한단다.

“(장갑에)꽃무늬나 만화 그려져 있음 좋을 것 같아? (장갑)차고 다닐 거야?”
“응.”
“왜 마음에 들어?”
“좋아서.”
“왜 좋은데?”
“무지개 같아서.”
“왜 무지개같아?”
“난 무지개가 좋아. 힘센 손 될 것 같아.”

김경미 씨가 채빈이와 아빠의 대화에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에 장갑 만든다고 했을 때 손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줬거든요.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네요.”

펀무브는 단순히 의수를 제작해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환자가 스스로 의수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도면과 아두이노 보드, 3D프린터만 있으면 필요한 이들은 얼마든지 필요한 때에 의수를 출력할 수 있다. 환자의 경험이 다른 환자에게도 전달되길 펀무브는 바라고 있다. 채빈이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장갑의 크기가 작아지면, 좀 더 큰 크기로 출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대신할 다른 방법을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찾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김경미 씨와 방경민 씨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경미 씨는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하던데, 아이한테 필요한 기능만 맞춤으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엄지를 대신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거나 지금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블로터, http://www.bloter.net/archives/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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